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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나눔] 살 길과 죽을 길 (렘 21:1-14)

말씀묵상
Author
lekayo
Date
2018-10-06 08:55
Views
1172
오늘 본문에서 유다 왕 시드기야는 예레미야에게 사람을 보내어 바벨론을 물리칠 수 있도록 기도를 요청하였고 예레미야는 오히려 유다의 멸망을 예언하였습니다. 그 중 8절에서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앞에 생명의 길과 사망의 길을 두었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바로 다음 절인 9절을 보면 이 때의 생명의 길이 나가서 항복하는 길임을 알 수 있습니다. 시드기야 왕이 생각했던 생명의 길과 사망의 길은 무엇이었을까요? 시드기야에게는 전쟁에서 승리하는 길 만이 살 길이라고 생각하였을 것입니다. 적군에게 항복한다면 시드기야는 패전국의 왕이므로 죽음으로 달려가는 직행 열차를 탄 셈이 될 것으로 보았을 것입니다. 최초의 시드기야의 의도와 예레미야의 예언의 내용을 보면 생명의 길과 사망의 길에 대한 개념이 완전히 뒤바뀌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역설적으로 하나님의 생각과 나의 생각이 다른 것은 하나님이 살아 계심을 증명합니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하나님이 독립적인 인격임을 매우 분명하게 보게 되는데 이는 믿고 구하는 문제와 직접적으로 서로 부딪칩니다. 성경에서는 무엇이든지 구하라고 가르칩니다. 그러면 인간이 마음에 소원을 품고 하나님께 기도하여 구하는 것은 바른 일일까요 잘못된 일일까요?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하나입니다. 그것은 어떤 과정을 통해서든지 하나님의 뜻과 나의 뜻이 같아지는 지점이 필요하다는 사실입니다.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 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 (요 16:24)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마 6:33) "다만 너희는 그의 나라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런 것들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눅 12:31) 모두가 하나님의 뜻과 나의 뜻이 어느 정도 조율이 되어 있음을 전제로 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과 나의 뜻이 같아지는 지점에 서 있을 때라면 우리는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여 그것을 받을 수 있는 권리를 누리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과 나의 뜻이 같아지는 것이 자유의 구속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성령 충만한 삶을 의미하며 하나님 안에서의 자유를 의미합니다. 물고기를 향한 하나님의 뜻은 물 속에서 사는 것입니다. 그런데 물고기가 물 속에 있는 것을 자유의 구속이라고 부를 수 없습니다. 물고기는 물 속에 있는 것이 자유이고 그 안에서 무한한 자유를 누립니다. 물 속이라고 하는 경계에 묶여 있는 것을 자유의 제한이라고 여겨 물 밖으로 나간다면 그것은 생명과 자유의 길이 아니라 사망의 지름길이 될 것입니다.

현실적으로 하나님의 뜻과 나의 뜻이 같아지는 일에는 몇 가지 테스트가 가능합니다. 그 첫째는 성경에 비추어 보는 것입니다. 성경은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 기록된 취지와 나의 취지가 맞부딪친다면 나는 물 밖에 나온 물고기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둘째는 신앙 공동체입니다. 지난 주에는 신앙은 본질적으로 하나님과 나와의 일대 일의 관계를 의미하고 신앙 공동체의 구성은 그러한 하나님과의 일대 일의 관계에 있어서 삶의 주권을 그리스도께 내어 드리는 일임을 나눈 바 있습니다. 내 생각과 기도가 그리스도께서 주인되신 신앙 공동체를 세우는 일인지 무너뜨리는 일인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만일 내 생각과 기도와 행동이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무너뜨리는 쪽으로 기울어 있다면 그 생각과 기도는 하나님의 뜻과 같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안전합니다. 세번째는 질서를 세우는 일입니다. 신앙 공동체로서의 교회를 세우는 일인지 무너뜨리는 일인지 자체가 판단이 어려울 수 있습니다. 대략적으로 질서를 갖추는 방향은 세우는 일이고 질서를 무너뜨리는 방향은 그 반대의 방향입니다. 네번째로, 질서를 세운다고 할 때의 질서는 장기적이고 미래적인 안목에서의 질서를 의미하며 바른 관계의 회복을 의미합니다. 지금 당장 눈에 보이는 혼란을 잠재우는 일이 질서를 세우는 일과 꼭 같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닥쳐올 재난과 전쟁과 파멸을 피하는 길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것은 억압하는 자와 억압 받는 자의 관계를 공평하고 정직한 관계로 회복하는 일입니다. 이것은 현재 이루어지고 있는 질서의 파괴를 의미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질서는 보다 큰 단위에서 그리고 모든 세부적인 관계에서 공의를 세우는 일에 맞닿아 있음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오늘 우리 삶이 하나님의 뜻과 잘 일치하고 있는지, 또는 최소한 더욱 일치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지 돌이켜 보는 시간 가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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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 하나님 아버지.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갈 길로 다니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예수로 말미암아 하나님과의 관계의 회복을 얻었으니 우리도 그와 같이 한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 공동체로서 하나되어 무너진 관계를 회복시키고 삶의 길로 나아가는 교회 이룰 수 있도록 하여 주시옵소서. 서로 돌아보아 넘어진 이들을 일으켜 주고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며 허물을 덮는 은혜를 나누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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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10-07 22:53
    '당장 보이는 혼란을 잠재우는 일이 질서를 세우는 일과 같지 않다' 는 말이 공감되고,,더 큰 계획하심 가운데로 천천히 나아가는 일이 중요함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 2018-10-13 08:54
    네, 더 길게 보아야 할 듯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