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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나눔] 무화과 광주리 비유 (렘 24:1-10)

말씀묵상
Author
lekayo
Date
2018-10-13 08:35
Views
1472
오늘 이야기는 예레미야가 본 환상에 대해 하나님께서 직접 풀어 주시는 내용으로 되어 있습니다. 유다는 총 세 차례 바벨론의 침략을 당하는데 이를 통하여 국가의 자원이 될 수 있을 만한 유력한 인물들은 대개 바벨론으로 끌려가고 그 외 일부가 유다에 남고 일부가 애굽과 각지로 흩어졌습니다. 이 일을 앞두고 예레미야는 하나는 좋은 무화과, 다른 하나는 나쁜 무화과가 담긴 두 개의 무화과 광주리의 환상을 보았고 하나님께서는 친히 예레미야에게 그 해석을 베풀어 주십니다.

좋은 무화과는 바벨론으로 끌려간 유다 포로이고 나쁜 무화과는 시드기야 왕과 그 고관들, 그리고 유다에 남은 사람들과 애굽으로 피신한 사람들입니다. 여기서 특이한 부분은 그들이 왜 좋은 무화과인지 또는 나쁜 무화과인지에 대한 설명이 전혀 없다는 것입니다. 좋은 무화과는 그저 유다인 중에서 색출되어 바벨론으로 끌려간 포로들일 뿐입니다. 나쁜 무화과 또한 아무런 설명 없이 그저 버리겠다고만 설명되어 있습니다. 더욱 특이한 것은 좋은 무화과에 대해서는 하나님을 아는 마음을 주어 돌아오게 한다는 점입니다. 그들이 전심으로 하나님께 돌아온다는 것은 좋은 무화과를 설명하는 말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아는 마음을 그들이 그냥 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그러한 마음을 그들에게 주셔서 그들이 전심으로 하나님께 돌아오게 된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와는 반대로 나쁜 무화과에 비유되는 사람들은 사방으로 흩어지고 환란을 당하고 부끄러움을 당하고 조롱과 저주를 받으며, 또한 칼과 기근과 전염병에 멸절하게 하겠다고 그냥 선언하십니다.

성경 전체로 보면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버리기로 작정하신 이유가 잘 드러납니다. 그것은 그들이 하나님을 떠나 범죄하였기 때문입니다. 그 범죄의 기록은 첫 인류였던 아담과 하와부터 시작합니다. 아담과 하와 이래로 모든 인류는 하나님과 같아지려는 교만함의 죄에서 벗어난 적이 없습니다. 이는 이스라엘과 유다의 거의 모든 왕들에 대한 평가에서도 드러나 있습니다. “그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더라.” 성경의 등장 인물들과 그들의 행적에 대한 기록을 보면 이스라엘 민족 뿐만 아니라 온 인류 자체가 죄악 가운데에서 패망하고 역사에서 사라지는 것은 당연한 결과인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구원을 작정하신 것은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을 창조하실 때 인간을 향하여 품으신 하나님의 뜻은 땅에 충만하고 땅을 정복하여 모든 생물을 다스리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창 1:22) 이러한 취지는 아브라함과의 언약으로 구체화 되었고 (창 12:1-2) 예수님은 이 언약의 길을 세상 모든 족속에 대하여 열어 주셨습니다. (마 28:18-20) 그러므로 유다 민족이 패망한 것은 하나님의 공의이고 바벨론으로 끌려간 사람들을 회복시키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은혜를 베푼 것 때문에 공의가 손상을 입지 않고, 공의 때문에 은혜는 더욱 두드러지게 됩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이 작정하셨다는 말이 담고 있는 하나의 큰 전제를 짚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시간의 구애를 받지 않습니다. 그런데 작정한다는 말은 그렇게 이루기로 마음 먹는다는 뜻입니다.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일에 대한 선언이며 앞으로 이루어 갈 것에 대한 의지의 표현입니다. 여기에는 시간의 관념이 그 기초에 놓여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결혼을 작정한다는 의미로 약혼을 합니다. 약혼을 먼저 하고 결혼을 하지 결혼을 한 사람이 약혼을 하지는 않습니다. 작정은 시간 표현입니다. 하나님이 구원을 작정하신 일은 인간의 존재가 시간에 매여 있기 때문에 그렇게 표현된 것입니다. 시간의 개념을 걷어내고 나면 하나님에게 있어서는 이미 이루어진 일과 작정하신 일과 그 일을 이루시는 것이 모두 같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에 대한 작정과 그에 대한 인간의 책임 또한 서로 배치되지 않습니다. 정교한 교향곡 한 편은 작품으로써 완결되어 있고 작정되어 있습니다. 이 때의 작품의 예술성은 무시간적인 특성을 지닙니다. 작곡된 작품과 연주되기로 작정된 작품과 연주된 작품이 모두 같습니다. 그러나 교향곡은 시간 예술입니다. 시간 속에서 연주되어야만 감상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각 곡들은 정성을 다하여 연주되어야만 합니다. 하나님의 구원은 인간에게 무시간적 은총으로 주어져 있지만 인간은 자기 삶이 다하도록 주어진 시간 속에서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총력을 기울여 그 구원을 연주해 내야 합니다. (빌 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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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 하나님 아버지, 내가 내 백성 아닌 자를 내 백성이라, 사랑하지 아니한 자를 사랑한 자라 부르리라 하신 그 은혜가 제게 큰 복이 됨을 고백합니다. 작정하여 부르신 그 부름에 힘입어 하나님이 하나님 되심을 인정하며 오직 하나님만을 섬기는 겸손한 신앙의 자리에 들어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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