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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나눔] 먼저 나신 이 (골 1:15-17)

말씀묵상
Author
lekayo
Date
2018-11-03 08:21
Views
1357
오늘 골로새서의 본문 15절은 예수님의 신분에 관한 매우 논쟁적인 주장의 근거로 사용되는 구절입니다.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 이”는 분명 그리스도께서 창조 이전부터 계신 하나님이심을 밝히는 표현입니다. 그런데 이 구절의 영어 표현은 “the firstborn of every creature”이고, 이를 직역하면 “모든 피조물의 첫 태생” 또는 “모든 피조물의 장자”로 읽을 수 있습니다. 어떻게 보아야 할까요?

소유의 형태로 표현된 말은 다양한 의미들을 담을 수 있습니다. “학교(의) 건물,” “회사(의) 차량,“ “동생(의) 연필,” “삼성(의) 자회사” 등은 모두 직접적인 소유 관계를 나타냅니다. 그러나 직접적인 소유의 관계를 나타내지 않는 경우도 많습니다. “나의 죽음을 적들에게 알리지 말라”에서 “나의 죽음”은 “내가 소유한 죽음”이 아니라 “내가 죽었다는 것”을 의미하므로 소유의 형태로 표현되었지만 행위의 주체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아야 합니다. “사의 찬미”는 “죽음이 소유한 찬미”가 아니라 “죽음을 찬미한다”는 뜻이므로 소유의 형태로 표현되었지만 행위의 대상을 의미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봄의 교향악이 울려퍼지는 청라언덕 위에 백합 필 적에”에서 “봄의 교향악” 또한 “봄이 소유한 교향악”이 아닙니다. 여기서는 백합이 만발한 청라언덕처럼 아름다움이 짙게 어우러진 봄을 교향악으로 비유한 것이고 이 때 봄과 교향악은 같은 것을 나타내는 동격의 의미를 갖습니다.

소유의 관계를 나타내는 경우에도 보다 특수한 의미를 담을 경우가 있습니다. "1분단(의) 첫번째 줄"은 "1분단이 소유한 첫번째 줄"이지만 그 중에서도 특히 "1분단을 구성하는 사람들의 첫번째 줄"이라는 뜻입니다. "교회의 머리"는 "교회가 소유한 머리"를 나타내지만 특히 "교회에서 머리의 역할을 하는 분"이라는 보다 구체적인 지위 관계의 뜻을 갖습니다. 이 때는 소속이나 부분을 나타내기도 하지만 반드시 그렇지는 않습니다. "소 떼(의) 주인"에서 주인은 소 떼와 밀접한 지위의 관계를 맺고 있지만 주인이 소 떼의 일부는 아닙니다. "양의 문"에서 문 또한 일종의 지위의 관계를 의미하지만 이 때 문은 "양에게 접근하는 정당한 경로"라는 매우 추상적인 뜻을 갖기도 합니다.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 이”에 해당하는 영어 표현 “the firstborn of every creature”가 심각한 논쟁을 불러 일으키는 것은 "무엇의" 또는 "누구의" 라는 뜻을 지니는 “of”라는 단어로 연결된 이 구절의 뜻에 대한 이해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이를 이해하는 방법은 크게 보아 두 가지 경우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번째는 부분으로서 순서를 나타내는 경우입니다. 이는 “1분단(의) 첫번째 줄”과 같은 경우입니다. 따라서 “firstborn”을 순서를 나타내는 말로 보았을 때 이 구절은 “모든 피조물의 첫 태생”으로 보아야 하고, 이렇게 보면 예수님은 모든 피조물이라고 하는 큰 그룹의 일부가 되어 성자 하나님이 아닌 피조물 중의 처음 나신 이가 됩니다. 두번째는 지위의 관계를 나타내는 말일 경우입니다. 이는 “교회의 머리”와 같은 경우입니다. 따라서 “firstborn”을 지위의 관계로 보았을 때 이 구절은 “모든 피조물의 장자/상속자/후계자”로 보아야 하고, 이렇게 보면 예수님은 모든 피조물에 대해 주권을 행사하는, 창조주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만물에 대하여 장자권, 즉 상속권 또는 후계권을 가진 성자 하나님이 됩니다.

이 두 가지 이해의 방법 중 어느 것이 옳은 방법인지에 대해서는 본문 안에서 분명한 증거들이 주어져 있습니다. 첫째로, 해당 구절 자체에서 주어진 증거입니다. “the firstborn of every creature”의 “every”는 개별 개념을 나타내는 말로 모든 종류의 피조물 각각의 것들을 지칭합니다. 그런데 순서를 나타내는 “첫 태생”이라는 말은 모든 피조물 각각을 의미하는 “every creature”가 아니라 모든 피조물을 군집적으로 통칭하는 “all creatures”와 연결되어야 합니다. 순서적으로 보아 단일 인격인 예수님이 모든 피조물 각각의 첫 태생이 될 수는 없고 피조물 전체를 통틀어 그 중 첫 태생이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장자권”은 모든 피조물 각각을 일컫는 “every creature”에 유효하게 해당하는 권리가 될 수 있습니다. 창조주 하나님의 권리는 모든 만물 각각에 대하여 똑같이 적용됩니다. 따라서 개별 개념 “every creature”와 상응하는 개념으로 보았을 “firstborn”은 순서를 나타낸 말이 아니라 지위를 나타낸 말로 보아야 합니다.

둘째로 같은 절 안에서도 그 설명이 주어져 있습니다. 같은 절 상반절입니다. “그는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이시요.” 이 때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표현에서 “하나님”과 “형상”은 동격의 말들입니다. 이 말은 하나님이 형상이시라는 주체의 표현도 아니요 하나님을 형상화 한다는 뜻의 행위의 목적의 표현도 아니고 하나님에게 형상을 준다는 뜻도 아니며, 하나님이 형상의 부분을 이루는 것도 아니고 하나님이 형상을 대표하는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형상인 그,” 즉, 하나님과 예수님은 문장 구조상 동격입니다.

또한 셋째로 오늘 본문에서 바로 이어지는 절이 예수님의 하나님 되심을 매우 분명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16절입니다. “만물이 그에게서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왕권들이나 주권들이나 통치자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이 설명보다 더 분명하게 그리스도 예수의 하나님 되심을 설명하는 말이 또 있을까요? 이어지는 17절에서는 예수님이 창조의 주체이자 목적일 뿐만 아니라 창조 자체임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 이 때의 “먼저 계시고”라는 표현은 시간적으로 창조 이전에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조차 초월한 무시간적 영원을 가리킵니다. 이러한 취지에서 만물이 예수님 안에 함께 섰다고 말하는 바울의 설명은 시간을 초월하는 하나님의 속성이 예수님에게 그대로 투영되어 있음을 잘 드러냅니다. 바울의 이러한 설명은 예수님을 창조주 하나님과 동등한 성자 하나님으로 볼 때에만 일관성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첫째, 주어진 구절 자체에서 주어진 증거와, 둘째, 같은 절 안에서 나란하게 주어진 증거, 그리고 셋째, 이어지는 절에서 분명하게 제시된 증거 등을 종합해 볼 때, 소유의 형태로 표현된 “the firstborn of every creature”라는 이 말은 “피조물 중 첫 태생”이 아닌 “피조물을 지으신 하나님의 장자/상속자/후계자”임을 표현한 것임을 확정할 수 있으며, 이로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가 피조물이 아니며, 만물의 창조주 되시는 성부 하나님의 독생하신 성자 하나님이심을 분명히 알 수 있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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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 하나님 아버지, 피조물로서 우리는 전적으로 타락하여 구원에 있어서 오직 무능할 뿐임을 깨닫게 됩니다. 능력이 있으신 하나님이 직접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내려오시는 것이 우리를 사망의 구덩이에서 끌어내시기로 작정하신 방법이었음을 믿고 깨닫고 감사 드립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우리를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시었음을 우리 다 같이 믿음으로 고백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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