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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나눔]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요 1:1-18)

말씀묵상
Author
lekayo
Date
2018-12-01 08:13
Views
1267
말은 말 하는 사람의 생각에서 출발하여 그 생각의 내용을 표현하고 다른 사람에게 들려진 후 허공에 흩어져 사라집니다. 말은 그릇에 담을 수도 없고 저기에 있다고 손가락으로 가리킬 수도 없습니다. 말은 생각된 것과 이야기된 것을 모양 없이 가리킬 뿐 만져지고 보여지는 것으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계시다는 것은 존재한다는 것을 뜻합니다. 일정한 시간 동안 일정한 공간을 차지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말씀이 계시니라" 라는 구절은 그 내용이 서로 어울리지 않는 문장입니다.

그런데 태초는 시간과 공간이 시작한 지점을 의미합니다. 더 나아가서 태초는 시간이 나뉘거나 공간이 나뉘기 전의 단일한 지점을 의미합니다. 어울리지 않는다, 일치하지 않는다, 조화되지 않는다라는 판단은 무엇이 나뉘어 있을 때에만 가능합니다. 따라서 시간이 나뉘거나 공간이 나뉘기 전의 단일한 지점인 태초에 있어서는 어울리지 않거나 일치하지 않거나 조화되지 않는 것 자체가 성립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태초라는 시점에서 보면 말씀이라는 말과 계시다라는 말이 어울리지 않는다라는 것도 성립하지 않습니다. 태초는 말하는 자와 듣는 자가 하나였던 지점이고 또한 말하는 것과 말하여진 것이 하나였던 지점입니다. 그러므로 태초는 말씀이 존재와 직접 맞닿은 지점입니다. 그리고 이 말씀이 곧 하나님이십니다.

요한복음에서 설명하는 창조의 과정은 매우 언어적이고 논리적인 과정입니다. (1-3)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정위) - 말씀이 자기 스스로를 말씀으로 정위합니다. 생각과 존재가 일치하였던 최초의 시점입니다.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반정위) - 정위된 말씀은 발화자 곧, 말씀하시는 분을 드러냅니다.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은유)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환유) - 말씀은 자기 자신을 발화자로 환원하고 곧 말씀하시는 분 곁에 나란히 섭니다. 이 때 하나님은 말씀에 대해 은유적(전치)인 동시에 환유적(병치)인 방식으로 드러납니다.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주술) - 이 말씀은 또한 모든 만물을 술어로 지시합니다. 만물은 말씀의 술어입니다.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문법) - 말씀이 존재를 결정합니다. 말씀은 창조의 목적이자 원리입니다.

태초에 가능하였던 이 모든 것들의 화해는 그리스도로 인하여 다시 한 번 가능하게 됩니다. 이 말씀이 곧 그리스도이기 때문입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14) 그리스도는 곧 우리에게 보내신 하나님의 편지입니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이 구속의 역사를 설명하는 법입니다. 우리는 그 설명하는 법을 배움으로써 구속사를 보는 법을 배웁니다. 하나님이 역사를 설명하는 법은 이렇습니다. "참 빛이 있었다. 그 빛이 세상에 와서 모든 사람을 비추고 있다. 그는 세상에 가셨다. 세상이 그로 말미암아 생겨났는데도 세상은 그를 알아보지 못하였다. 그가 자기 땅에 오셨으나 그의 백성은 그를 맞아들이지 않았다. 그러나 그를 맞아들인 사람들,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특권을 주셨다. 이들은 혈통에서나 육정에서나 사람의 뜻에서 나지 아니하고 하나님에게서 났다. 그 말씀은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았다. 그것은 아버지께서 주신 외아들의 영광이었다. 그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였다." (9-14 새번역)

이것이 우리에게 보내신 하나님의 편지이고 이 편지의 서술이 곧 그리스도입니다. 우리가 오늘날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는다는 것은 곧 이 서술을 믿는 것이고 이러한 서술을 믿음으로써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특권을 얻습니다. 12절 말씀입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12) 믿음은 서술이지만 하나님의 자녀는 존재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다시 한 번 서술이 존재를 규정하는 화해와 일치의 시점을 발견하게 됩니다.

요약하면, 요한복음 1장에서는 말과 존재가 일치하는 시점이 세 번 나타납니다. 그 첫번째 지점은 태초입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십니다. 그 두번째 지점은 그리스도입니다. 말씀이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시었습니다. 그 세번째 지점은 우리들 자신입니다. 예수 그 이름을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이 보내신 편지 –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특권을 얻습니다. 믿음은 인식론적인 변화인 동시에 존재론적 변화입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라는 인식론적 변화가 하나님의 자녀라고 하는 존재론적 변화를 불러 일으킵니다. 바로 오늘 매 순간 우리가 하나님의 편지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르게 읽고 입술에 담긴 말로서 믿음을 고백할 때 구원이 임하고 우리의 존재가 곧 하나님과 화해하게 됨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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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 하나님 아버지, 우리 입술에서 나오는 말은 아무런 능력이 없어서 나무에 달린 잎새 하나 흔들 수 없을 줄로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예수의 대속의 은혜를 믿는 믿음의 고백만으로 우리 존재가 영원한 죽음에서 영원한 생명으로 옮기게 됨을 깨닫고 믿습니다. 오직 예수님을 통하여 베풀어 주신 구원의 은총을 믿사오니 우리를 사망의 몸에서 건져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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