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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나눔] 내가 너희와 함께 하노라 (학 1:1-15)

말씀묵상
Author
lekayo
Date
2018-12-29 09:20
Views
1048
우리는 차를 몰고 도로를 다닐 때 앞으로 나아가기도 하고 뒤로 후진하기도 하며 좌회전도 하고 우회전도 합니다. 그러나 시간은 거꾸로 흐르지 않고 오직 한 방향으로만 나아갑니다. 꽃은 피어서 지고 다시 피지 않습니다. 한 나무라 할지라도 다시 피는 꽃은 다른 꽃입니다. 물은 흘러가고 그 자리로 돌아오지 않습니다. 아침 식사를 준비하며 팬에 계란을 깨뜨려 넣을 수는 있지만 깨진 계란을 다시 원래의 모양으로 붙여 만들 수는 없습니다. 연필은 닳아 없어지고 우리의 기억은 항상 과거에 존재하지 미래를 기억하는 일은 없으며 거꾸로 약속은 미래에만 해당하고 과거를 약속하지는 않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역사의 화살표 또한 한 방향으로 흘러갑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에서는 바벨론의 포로 생활을 마치고 귀환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전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고 있습니다. 이 때 무슨 일로 말씀을 전해 오셨는지 먼저 질문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학개 선지자를 통하여 선포하신 말씀의 가장 첫 부분에서 문제의 요점을 이렇게 제시 하십니다. “이 백성이 말하기를 여호와의 전을 건축할 시기가 이르지 아니하였다 하느니라.” (2절) 이 짧은 구절은 하나님이 관심을 두신 쟁점 두 가지를 명확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 첫번째는 “여호와의 전”이고 두번째는 “건축할 시기”입니다.

첫째로, “여호와의 전”이 가리키는 것은 본문 중에서 매우 분명합니다. 4절과 8절에서는 “이 성전”으로 직접 지시되고 있고 9절에서는 “내 집”이라는 말로 표현되고 있습니다. 이 성전은 당시 이스라엘의 문화와 환경에서는 오해의 여지 없이 폐허가 되어 있는 예루살렘 성전을 가리킵니다. 어찌 보면 매우 분명한 이 지시의 대상을 확인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당시의 맥락에서 벗어나 있는 오늘날의 상황에서 우리가 이것을 잘못 이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당시 성전은 제사장들이 일하는 곳이었고 짐승들을 죽여 인간들의 죄를 대속하는 속죄제가 거행되는 곳이었으며 이스라엘 백성을 택하여 인도하신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곳이었습니다. 이는 백성들의 집과 대비될 뿐만 아니라 유대교의 회당과도 다른 것이고 오늘날의 대규모 교회 건물과는 더더욱 다른 것입니다. 오늘날의 제사장은 누구입니까? 우리들 자신입니다. 오늘날의 거룩한 속죄제는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하나님의 어린양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들 모두를 포함한 온 인류의 죄를 대신하여 단번에 속죄제의 희생으로 하나님께 드려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의 속죄의 제사는 왕같은 제사장이 된 우리들 자신의 마음 속에서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총을 믿음으로 드려집니다.

둘째로 “건축할 시기” 또한 본문 중에서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말씀하시는 바로 그 때로 이 역시 본문 중에서 매우 분명하게 드러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왜 하필 그 때여야 하는지 그 이유에 대해서는 분명하게 드러나 있지 않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이 성전 재건을 명령하고 계신 것은 과거 솔로몬 성전의 영광을 재현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궁핍한 시기의 백성들에게 성전 재건의 의무를 먼저 부과한 것은 그 성전이 곧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이 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성전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을 몰아내신 후 표적을 구하는 유대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요 2:19) 이 말씀에 대하여 요한은 이렇게 풀이합니다. “그러나 예수는 성전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재건된 예루살렘 성전은 고난과 죽으심과 부활로 이어지는 예수님의 핵심 사역에 대한 상징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이 성전을 다시 짓는 일은 바로 이 때 – 다리오왕 제이년 여섯째 달 곧 그 달 이십사일 바로 그 날 – 시작되어야 하였습니다. 이제 500 여년의 공백기를 앞두고 지금 막 70 년의 포로 생활을 마치고 바벨론에서 귀환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메시야의 탄생과 다스리심에 대한 구약의 마지막 예언들을 선포해야 하는 바로 이 때에 하나님은 성전 재건을 명령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명령에 대하여 이스라엘의 지도자들과 백성들은 즉각적으로 순종하였습니다. (12절) 이러한 즉각적인 순종을 보시고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위로하십니다. “내가 너희와 함께 하노라.” (13절) 이 위로의 말씀 또한 구속사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직접적으로는 성전 건축이라고 하는 거대한 사업을 앞두고 그 건축이 완성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겠다는 축복의 말씀입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또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베푸시는 궁극적인 위로에 대한 복선이기도 합니다. 마태복음 1장 23절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학개 1장에서 “내가 너희와 함께 하노라” 라고 위로하신 하나님의 말씀이 마태복음 1장에서는 예수님의 이름 – 곧 임마누엘로 화답되고 있습니다.

요약하면, (1) 오늘 학개 1장에서 우리가 읽은 하나님의 말씀은 당시의 특수한 역사적 상황 속에 주어진 바로 그 예루살렘 성전에 대한 말씀입니다. 이를 오늘날 교회의 건축을 위한 근거 자료로 삼는 것은 맞지 않습니다. (2) 이 특수한 역사적 상황은 단일한 방향으로 흘러갑니다. 솔로몬의 영광을 되찾기 위한 것이 아니라 오실 메시야와 그의 다스리심을 준비하기 위한 것입니다. (3) 그리고 학개 1장에서의 하나님의 논증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 이스라엘 백성의 순종에 대하여 하나님은 우리에게 약속하십니다. “내가 너희와 함께 하노라.” 그리고 이 약속은 이천년 전 유대땅 베들레헴에 아기로 오신 우리 주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임마누엘 – 곧, 우리와 함께 계신 하나님의 축복이 되어 오늘 우리에게 기쁜 소식으로 전해졌습니다. 이 소식은 주어진 역사적 조건 속에서 하나님의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총을 믿는 모든 사람들 – 곧 오늘 우리들에게 주어진 기쁨의 좋은 소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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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의 계획은 역사 속에서 이루어지며 그 모든 지시가 예수님 한 분을 향해 있음을 깨닫습니다. 이 많은 증거들로 우리 믿음을 굳게하여 주시니 감사 드립니다. 임마누엘이신 예수님이 오늘도 우리와 동행하며 “내가 너희와 함께 하노라” 하신 하나님의 위로와 축복을 우리에게 전하여 주심을 믿고 감사 드립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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