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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나눔] 하늘에 보화를 쌓으라 (마 6:19-34)

말씀묵상
Author
lekayo
Date
2019-01-26 19:37
Views
1781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고 하늘에 쌓아 두라고 말씀하십니다. 보물을 땅에 쌓지 말라는 말씀은 그래도 이해하기 쉬우나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는 말씀은 쉽게 이해되지 않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다른 복음서에도 등장합니다. 누가복음에서는 이 말씀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너희 소유를 팔아 구제하여 낡아지지 아니하는 배낭을 만들라 곧 하늘에 둔 바 다함이 없는 보물이니 거기는 도둑도 가까이 하는 일이 없고 좀도 먹는 일이 없느니라.” (눅 12:33)

이제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고 하늘에 쌓아 두라고 하신 마태복음 6장 말씀의 뜻이 조금 더 분명해 졌습니다. 이는 무소유에 관한 가르침이 아니라 구제에 관한 가르침입니다. 땅에서 소유를 얻는 일에 대한 말씀이 아니라 가진 재물을 어떻게 쓸 것인가에 대한 말씀입니다. “소유를 팔아 구제하여”에서 주가 되는 부분은 “구제하여”입니다. “소유를 팔아” 라는 말은 가진 것을 모두 팔아 가난하게 되라는 뜻으로 제시된 말이 아니라 구제하는 일이 어느 정도의 열심을 가지고 해야 하는 일인지를 가늠할 수 있게 하기 위해 제시된 말입니다. 구제를 하되 남은 것으로 구제하는 것이 아니라 내 소유를 팔 수 있을 정도로 진지하고 열심 있는 마음으로 구제를 하라는 의미입니다.

일반적으로 구제를 강조하는 것은 구제 받을 사람에게 혜택이 돌아가기 때문일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오늘 본문에서 하늘에 보화를 쌓으라는 이 말씀의 이유를 다르게 밝히십니다. 그것은 보물이 있는 곳에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21절) 뜻밖에도 예수님의 관심은 구제 받는 사람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구제를 행하는 사람의 마음에 있습니다. 보물은 삶의 가치관을 지시합니다. 보물을 쌓는 것은 그의 삶을 설명하는 방식을 의미합니다. 소유를 팔아 구제하는 사람은 소유를 도구라고 설명하고 자기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는 사람은 소유를 목적이라고 설명합니다. 소유를 도구로 생각하는 사람과 소유를 목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의 삶에 대한 견해, 즉 삶에 대한 가치관은 같은 것일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보물이 있는 곳에 마음이 있다는 말씀은 어디에 가치를 두고 소유를 대하느냐는 질문입니다.

이처럼 가치를 대하는 자세는 영혼의 집에 뚫려 있는 창문과도 같습니다. 우리 몸에서 빛을 들이는 창문이 눈인 것처럼 영혼의 집에서 빛을 들이는 창문은 가치관입니다. 예수님은 (창문이 온전하면 온 집이 밝듯이) 눈이 온전하면 온 몸이 밝다고 말씀하십니다. (22절) 또한 만일 우리의 가치관이 순전하여 하늘을 향해 있다만 우리의 영혼이 하늘의 빛을 볼 수 있을 테지만 만일 우리의 가치관이 땅 위에서 물질을 소유하는 일에 몰두해 있다면 하늘의 빛을 얻을 수 없을 테니 그 어둠이 얼마나 어두울 것인지 강조하십니다. (23절) 그러므로 우리는 재물을 소유하여 부를 확대하는 일에 가치를 두지 말고 재물을 통하여 선행과 사랑으로 하나님 나라의 확장에 기여하는 일에 가치를 두어야 합니다. 이 둘은 서로 상충하는 가치이므로 둘 중 하나를 택할 수 밖에 없게 됩니다. 마치 종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24절)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재정적 여력이 있는 사람들을 위한 구제에 관한 가르침과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믿음에 관한 관한 가르침을 나란히 주셨습니다. 대략 보아 19절부터 24절까지는 재정적 여력이 있는 사람들에게 소유를 팔아 구제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계시고 25절부터 34절까지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계십니다. 이 둘은 나란히 일어날 때 서로 보완하는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여력이 있는 사람들이 소유를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게 되면 가난한 사람들은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않아도 될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서 선포된 예수님의 말씀은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들의 백합화와 공중에 나는 새를 입히시고 먹이시는 것이 하나님이심을 분명히 하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먼저 구하면 이 모든 것을 나누어 주실 것이라 하지 않으시고 이 모든 것을 더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33절) 예수님의 이러한 뜻은 이미 신명기에서도 같은 메시지로 선포되어 있습니다.

“네가 만일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만 듣고 내가 오늘 네게 내리는 그 명령을 다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신 땅에서 네가 반드시 복을 받으리니 너희 중에 가난한 자가 없으리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신 땅 어느 성읍에서든지 가난한 형제가 너와 함께 거주하거든 그 가난한 형제에게 네 마음을 완악하게 하지 말며 네 손을 움켜 쥐지 말고 반드시 네 손을 그에게 펴서 그에게 필요한 대로 쓸 것을 넉넉히 꾸어주라. 너는 반드시 그에게 줄 것이요, 줄 때에는 아끼는 마음을 품지 말 것이니라 이로 말미암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가 하는 모든 일과 네 손이 닿는 모든 일에 네게 복을 주시리라 땅에는 언제든지 가난한 자가 그치지 아니하겠으므로 내가 네게 명령하여 이르노니 너는 반드시 네 땅 안에 네 형제 중 곤란한 자와 궁핍한 자에게 네 손을 펼지니라.” (신 15:4, 7-8, 10-11)

사랑과 선행은 나누기가 아니라 더하기입니다. 내가 가진 것과 네가 가진 것을 나누어 모두가 평균적으로 필요한 것을 채울 수 있게 만드는 사회과학적 셈법이 아닙니다. 사랑과 선행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나라를 채우고 하나님의 의를 세우는 행동 원리입니다. 오늘 우리 삶에서 연약한 이웃에게 베푸는 사랑과 선행이 없다면 과연 우리가 그리스도의 참된 제자인가 돌이켜 보아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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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 하나님 아버지, 믿음의 자녀들이 오직 사랑과 선행으로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할 때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 위에서도 이루어지게 될 줄을 믿습니다. 이러한 착한 마음과 바른 가치관으로 우리를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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