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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나눔]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마 9:14-17)

말씀묵상
Author
lekayo
Date
2019-02-02 07:39
Views
1190
오늘 본문에는 요한의 제자들과 예수님 사이에 있었던 금식에 관한 논쟁이 정리되어 있습니다. 요한의 제자들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어찌하여 금식하지 않느냐고 물었고 예수님은 이에 대하여 세 가지 비유를 들어 대답하십니다. 첫째, 혼인 집 손님들의 경우입니다. 신랑과 함께 있을 때 슬퍼하는 것이 맞지 않다고 말씀하십니다. 둘째, 낡은 옷의 경우입니다. 생베 조각을 낡은 옷에 덧대는 것이 맞지 않다고 말씀하십니다. 셋째, 포도주의 경우입니다. 새 포도주를 낡은 부대에 넣는 것이 맞지 않다고 말씀하십니다. 이 모든 비유들은 두개씩 짝을 이루어 서로 맞지 않음을 밝히고 있습니다. 결혼식과 금식, 생베 조각과 낡은 옷, 새 포도주와 낡은 부대는 서로 맞는 조합이 아닙니다. 이러한 대답은 어찌하여 예수님의 제자들이 금식하지 않는지 그 이유를 묻는 질문에 대한 정확한 대답이 됩니다. 예수님과 함께 있다는 사실과 슬픔의 표현인 금식은 서로 맞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사용하신 이 논증은 매우 단순하고 명확한 비유에 의한 것입니다. 그러나 비유에 사용된 각 항목들에서는 추가의 의미를 찾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열 처녀 비유에 신랑과 신부가 등장합니다. (마 25:1-13) 예수님을 신랑으로 보고 교회를 신부로 보았을 때 두드러진 심상은 기다림과 순결 그리고 사랑의 관계입니다. 생베는 다른 복음서에서 새 옷으로 표현되기도 하였습니다. 마가복음에서는 예수님의 옷 가에라도 손을 대는 자는 다 성함을 얻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막 6:56) 이 때 예수님의 옷은 예수님의 권능의 통로로 사용되었으며 치유하시는 은혜와 용서를 상징하는 매개물이 됩니다. 사도 바울은 이 심상을 발전시켜 그리스도 자체를 옷의 이미지로 보아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는다는 표현을 사용하기도 합니다. (롬 13:14) 예수님은 또한 최후의 만찬에서 제자들에게 포도주를 건네시며 이것은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언약의 피라고 하십니다. (마 26:28, 막 14:24) 포도주를 예수님이 흘리신 새 언약의 피로 보았을 때 두드러진 심상은 희생과 대속 그리고 구원입니다.

이러한 비유의 해석은 모두 비유 이전에 원래 있었던 대상(원관념)과 비유를 통하여 도입된 보조적 대상(보조관념)과의 관계를 일대일 또는 일대다로 두고 해석한 것입니다. 그러나 원관념과 보조관념이 다대다의 대응관계를 이루는 방식으로 짜여진 비유가 있습니다. 존 번연의 천로역정이 이러한 비유로 씌어져 있습니다. 이 소설은 그리스도인의 삶이라고 하는 복잡하고 추상적인 관념들을 크리스찬이라고 하는 주인공이 여행길에서 겪게 되는 일들과 만나게 되는 사람들, 지나게 되는 장소들로 대응시켜 보여 줍니다. 원관념과 보조관념을 이루는 요소들이 양쪽 모두 다수로 구성되었고 각 요소들의 관계가 나란히 대응하며 이야기에서의 관계가 실제에서의 관계보다 단순한 것이 이러한 비유의 특징입니다. 이러한 비유법은 원관념을 이루는 요소들 간의 관계에서 누락된 부분이 있을지라도 이를 보조관념을 이루는 요소들간의 관계에 비추어 추정할 수 있게 만드는 강력한 힘을 지니고 있습니다. 씨를 뿌리는 자의 비유나 가라지의 비유 등 예수님이 사용하신 비유들 중 몇 가지가 이러한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새 포도주와 낡은 부대를 서로 어울리지 않는 것에 대한 비유로 보는 것과 포도주를 그리스도께서 흘리신 새로운 언약의 피로 보는 것은 예수님의 말씀에 기반한 해석입니다. 그러나 이 비유를 다대다의 관계로 이루어진 비유로 해석하는 일에는 주의할 점이 있습니다. 그러한 해석에는 보조관념을 이루는 요소들의 관계에서 유추하여 예수님이 직접 말씀하지 않은 부분까지 해석하게 함으로써 예수님 말씀의 본질적인 내용을 변경시킬 위험이 따르기 때문입니다. 새 포도주는 예수님, 새 부대는 예수님이 주시는 새로운 계명, 묵은 포도주와 낡은 부대는 율법이라고 보는 것은 성경의 다른 말씀들에 비추어 볼 때 적절하지 않습니다. 다대다의 관계로 이 비유를 해석하면 새 포도주와 낡은 부대는 서로 상관이 없으므로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은 율법을 지킬 필요가 없다는 의미로 해석하게 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율법에 대해 다르게 말씀하십니다.
  •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마 5:17-18)
  •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마 23:23)
  • 예수께서 이르시되 율법에 무엇이라 기록되었으며 네가 어떻게 읽느냐 대답하여 이르되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였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대답이 옳도다 이를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 하시니. (눅 10:26-28)
  • 나의 계명을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요 14:21)
  •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요15:10)
율법은 버릴 것이 아니라 우리 주님이 직접 피 흘려 죽으심으로 가르치신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으로 완성시켜야 할 것입니다. 구원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주어진 은혜로 성취되지만 구원 받은 성도는 하나님 명령의 실천 그리고 정의와 긍휼과 믿음으로 거룩함을 이루어 가고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로서 서로 사랑하라 하신 주의 계명을 지킴으로 율법을 완성해 갑니다. 우리 모두 그러한 삶에 가까이 가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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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이 주신 율법의 정신은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며 그리스도께서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신 언약의 피가 율법을 완성시키는 사랑의 모범인 줄을 믿습니다. 율법을 통하여 주신 하나님의 명령들을 소중히 여기고 간직하며 그것을 실천하기 위하여 노력하게 하시고 그것이 낡은 부대라고 잘못 생각하여 버릴 것으로 여기지 말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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