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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나눔] 씨 뿌리는 농부 (마 13:1-17)

말씀묵상
Author
lekayo
Date
2019-02-16 08:53
Views
1051
우리가 알고 있는 세계는 있는 그대로의 세계가 아닙니다. 세계는 설명되어진 세계이고 설명하는 방식은 보는 방식을 결정합니다. 초등학교 아이들에게 도화지와 크레파스를 주고 사과를 그려 보라고 한다면 따로 미술 교육을 받지 않은 대개의 아이들은 빨간색 크레파스로 빨간 사과를 그릴 것입니다. 그러나 실제의 사과는 크레파스의 빨간 색과 같은 빨간 색이 아닙니다. 어떤 것은 분홍 빛이고 어떤 것은 초록색이며 또 어떤 것은 자주빛에 가깝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어려서부터 원숭이 똥구멍은 빨개, 빨가면 사과~ 라고 설명하는 법을 배우며 자랐기 때문에 사과가 빨갛다, 빨간 사과라고 하는 우리의 인식, 사물을 보는 법은 정당성을 얻게 됩니다. 한 여름 바닷가의 모래밭 위로 짙게 드리운 구름의 그림자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그림자가 드리운 곳도 모래밭의 색깔이지만 우리는 어렸을 때부터 피터팬의 이야기를 읽으며 웬디가 꿰매어 준 도망다니는 그림자를 두고 검은 그림자 라고 설명하는 법을 배우며 자랐기 때문에 그림자가 검다, 검은 그림자라고 하는 우리의 인식 또한 정당성을 얻게 됩니다. 우리가 인지하는 세계는 존재하는 것들과 헐겁게 연관지어진 설명들로 구성된 세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세상을 보는 방식은 설명되어진 방식입니다. 이 설명은 참되게 존재하는 세상을 드러내는 동시에 은폐합니다. 사과가 빨갛다고 설명하는 순간 사과의 색상이 드러나고 밝혀지지만 또한 동시에 참되게 존재하는 사과의 색은 감추어집니다. 그림자를 두고 검은 그림자라고 설명하는 순간 그림자의 있음이 드러나고 밝혀지지만 그림자의 배경을 이루는 원래의 사물의 색깔은 감추어집니다. 오늘 본문에서 우리 주님은 천국의 비밀에 대해 비유로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 말씀은 천국을 드러내어 설명하신 것이지만 그러나 동시에 천국은 여전히 감추어져 있습니다. 비유는 천국을 설명하는 방식이지 천국은 아닙니다. 천국은 설명을 통하여 드러났지만 그것을 깨닫고 실천하는 일에 있어서는 여전히 감추어져 있습니다. 이 문제는 오늘날 주님을 따르는 우리에게 삼중의 고통을 가져옵니다. 천국은 예수님과 제자들과 교부들과 성직자들을 통하여 역사 속에서 수 없이 설명되어졌습니다. 그러나 그 설명은 모두 천국을 직접 보여주지 않습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우리들 모두는 그러한 설명들을 통하여 설명된 천국을 각자 해석합니다. 그렇게 해석된 천국 또한 천국이 아닙니다. 천국이 이미 설명을 통하여 은폐되었고 해석을 통하여 다시 한 번 은폐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천국이 이러하다 또는 저러하다는 모든 설명은 오직 천국을 가리키는 지시가 될 뿐 우리를 직접 천국으로 인도하지 않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천국을 씨 뿌리는 농부로 비유하고 있습니다. 이 비유에서도 말씀은 열매가 아니라 씨입니다. 그것은 씨가 그 속에 열매를 품고 있지만 씨는 결코 열매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말씀은 천국에 대한 설명으로 주어졌지만 천국은 실천입니다. 말씀을 듣고 품어내고 길러내는 자만이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이 열매를 맺는 일에 도달한 사람들은 그 실천을 통하여 천국의 비밀에 근접합니다. 10절 말씀입니다.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이르되 어찌하여 그들에게 비유로 말씀하시나이까.” 15절 말씀입니다. “이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그 귀는 듣기에 둔하고 눈은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을까 두려워함이라 하였느니라.” 천국은 설명되어졌지만 여전히 감추어져 있습니다. 귀는 듣기에 둔하고 눈은 감았습니다. 그러나 마음으로 깨닫고 돌이킬 때 천국이 드러납니다. 돌이킬 때, 바로 그 때 돌이켜 하나님께 고침을 받는 일, 그 일이 바로 천국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한 번 더 진리의 속성에 대한 반성이 필요합니다. 깨달아 돌이킬 때 그 깨달음은 설명되어진 것에 대한 깨달음이어서는 안됩니다. 마치 유대인들이 온 몸을 동여맨 사슬과도 같은 무거운 율법주의적 의무에 압도되어 정작 중요한 율법의 정신을 잊고 살았던 것과 같은 원리입니다. 깨달음과 돌이킴은 매일 매일 새롭게 되는 실천을 통하여 이루어집니다. 설명되고 기록되기 이전의 실천이 그 돌이킴의 원리가 되어야 합니다.

설명된 모든 것은 드러내는 동시에 은폐합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삶과 나의 삶은 직접 연결되어야만 합니다. 말씀을 듣고 품고 길러내어 열매를 맺는 일은 기록되고 설명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기록되고 설명된 그 일로부터 늘 새로운 관계와 실천을 찾아내지 않으면 그것은 이미 죽은 실천이 됩니다. 이것이 열매다 라고 생각되는 순간 그것을 버리고 새로 열매를 맺는 일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또한 이것이 율법이다 라고 생각되는 순간 그것을 버리고 매일의 삶 속에서 그 율법의 정신이 무엇인지를 되새겨야 합니다. 12절 말씀입니다. “무릇 있는 자는 받아 넉넉하게 되되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 매일의 삶 속에서 새로운 실천이 있는 사람은 (있는 자는) 날마다 새로운 은혜로 채워지지만 (받아 넉넉하게 되되) 그렇지 않고 기록되고 설명된 열매에 도취되어 새로운 실천이 없는 사람은 (없는 자는) 그 기록된 열매 마저도 아무런 가치 없는 일이 되고 말 것입니다.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

11절 말씀입니다.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그들에게는 아니되었나니.”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허락된 “너희”는 예수님 당시의 주님의 제자들입니다. 이 말씀을 모든 시대의 모든 제자들로 확대하는 데에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17절 말씀 때문입니다. “많은 선지자와 의인이 너희가 보는 것들을 보고자 하여도 보지 못하였고 너희가 듣는 것들을 듣고자 하여도 듣지 못하였느니라.” 16절에서 주님의 제자들이 봄으로, 들음으로 복이 있다고 말씀하신 이유는 이 제자들이 매일의 삶을 실제로/실천적으로 그리스도와 동행하며 주님을 직접 보고 직접 그 말씀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 무엇도 설명되기 전에, 그 무엇도 기록되기 전에 날마다 새롭게 생성하는 그 삶 속에서 그리스도를 만난 제자들은 모든 선지자와 의인들이 부러워할 그 복을 누립니다. 이것이 곧 천국의 비밀입니다. 오늘 우리 또한 아무 것도 설명하지 말고 아무 것도 기록하지 말며 아무 것도 자랑할 것이 없는 상태로 매일 매일의 삶 속에서 항상 다시 주신 말씀에 비추어 그리스도와의 관계를 새롭게 하고 새로운 실천을 찾아내는 일을 통하여 우리가 찾는 천국의 비밀에 가까이 가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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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과 씨름한 야곱이 부럽습니다. 주님의 제자들이 부럽습니다. 오늘 우리의 삶에서 그리스도와 맺은 언약은 날마다 새롭게 하는 언약인 줄을 믿습니다. 내가 서 있는 그 자리가 어디인지를 돌아보되 그것이 죄의 사슬이든 율법의 형틀이든 우리를 자유롭지 못하게 하는 모든 관계의 그늘이든 벗어나게 하시고 오직 삶의 실천 가운데 함께하여 주신 주님의 동행하심의 역사와 오늘 새로운 실천 가운데 함께 하여 주시는 동행하심의 기쁨만이 우리 삶을 늘 새롭게 채우게 하여 주시옵소서. 천국의 비밀을 보이셨으니 그 말씀을 듣고 품고 길러내어 열매 맺는 일이 우리 안에, 우리 삶에 날마다 일어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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