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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나눔] 누가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가? (마 19:13-30)

말씀묵상
Author
lekayo
Date
2019-03-23 09:20
Views
1030
올해는 멜번서부교회 창립 1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멜번서부교회는 멜번 서부 지역에 기도의 처소를 마련하여 줄 것을 소망하는 성도들의 희망에 따라 멜본한인교회의 지원으로 서부 지역에 교회를 설립함으로써 일곱 가정이 모여 출발할 수 있게 하였던 디아스포라 한인 교회입니다. 이민 교회의 특성상 교회 구성원의 숫자에 비해 교회를 거쳐간 사람들의 숫자가 훨씬 크며 멜번 서부 지역의 특성상 미취학 아동 및 초등학교 연령의 자녀를 둔 젊은 세대의 비율이 높고 자영업보다는 일반직과 전문직에 종사하는 사람이 많은 매우 역동적인 구조를 지닌 교회입니다. 10년의 세월이 지나면서 초등학교 연령의 자녀들이 중고등학교로 진학하였고 또 각 가정의 학생들이 대학에 진학하고 사회에 진출하면서 그나마 지역에 뿌리를 둔 지역 교회로서의 면모를 조금씩 갖출 수 있었습니다. 그리 길지 않은 세월 동안 세 명의 목회자를 두었고 운영위원회와 의회 체제를 오가는 변화를 겪었으며 연합교회로서 7년과 독립교회로서 2년 그리고 이제 막 호주장로교회로서 1년을 보낸 영적 노마드 - 유목민으로서 풍모를 갖춘 교회이기도 합니다.

10년이 지난 지금 이 시점에서 이제 우리가 이룬 것은 무엇인지 살펴보게 됩니다. 우리 모두가 기억하는 가장 격렬하고 역동적인 지점은 우리가 몸 담았던 호주연합교회와의 결별이었고 그 다음으로 격렬하고 역동적인 지점은 2년의 터울을 두고 진행된 지금 우리가 몸 담고 있는 호주장로교회로의 이동입니다. 이 두 가지 지점들은 단순한 교단의 변경을 떠나 그보다 훨씬 다양하며 치열한 내면의 동기와 외적 사건들을 함축하고 있습니다. 결론만 추려 본다면 호주연합교회와의 결별은 동성애를 옹호하고 결혼 제도의 재정의를 시도하는 등 교단의 노골적인 자유주의적 흐름에 대한 반대의 선언이었고 호주장로교회로의 이동은 그 대척점에 해당하는 보수적인 정통 개혁주의 신앙에 대한 참여의 선언이었습니다. 그러한 과정에서 서부교회는 스스로 자유주의적 방종과의 결별이라는 훈장을 달았고 정통보수주의 교단의 일원이라는 뱃지를 달기도 하였습니다. 외형적으로도 서부교회는 장로들을 선출하여 당회를 구성하였으며 기존의 운영위원회를 독립 교회의 임시적 운영 기구가 아니라 호주장로교회 교단 헌법에 근거한 헌법 기관으로 재정립하여 명실상부한 장로교 정치 체제를 갖추게 되었습니다. 멜번서부교회 10주년, 이제 우리는 연약하고 가진 것 없는 어린 아이의 시절을 지나 훈장과 뱃지와 조직과 역사를 정리할 수 있을 그 시작점에 막 들어서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이러한 시점을 경과하는 우리에게 전해 주시는 주님의 중대한 메시지들이 들어 있습니다. 우선 우리의 지난 10년에 대한 하나님의 위로입니다. 13절과 14절에서 우리 주님은 어린 아이들을 주님께로 데리고 오는 부모들을 제지하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어린 아이들을 용납하고 내게 오는 것을 금하지 말라 천국이 이런 사람들의 것이니라." (14절.) 이는 어린 아이들의 순수함과 선함을 기념한 말씀이 아닙니다. 가진 것이 없고 자랑할 것이 없는 작은 자를 기념한 말씀입니다. 어쩌면 멜번서부교회의 지난 10년의 세월동안 우리 주님은 이같은 마음으로 우리를 품어 주셨을 것입니다. 무엇을 잘 해서가 아니라, 쌓인 공적이 있어서가 아니라, 마음이 착하거나 순수한 사람들이 모였기 때문이 아니라, 말씀을 사모하고 기도에 몰두하는 신앙심 깊은 교회였기 때문이 아니라, 그저 어린 아이와 같이 새로 난 교회였으므로, 그러므로 모든 것이 미숙하며 자랑할 것이 없는 교회였으므로, 멜본한인교회와 크로스로드 연합교회의 끊임 없는 살핌과 지원이 필요했던 교회였으므로, 그리고 늘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구할 수 밖에 없는 연약한 교회였으므로 주님은 우리를 용납하고 품어 주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본문 앞부분에서 어린 아이들을 품어 주셨던 우리 주님은 이어지는 본문에서 부자 청년을 만나시며 엄중한 경고의 메시지를 남기십니다. 이 부자 청년은 선한 청년이라는 별명을 붙일 만합니다. 그에게는 우선 주님을 찾는 마음이 있었고 (16절) 선한 일과 영생에 대한 관심이 특별하였을 뿐만 아니라 (같은 절) 그는 최선을 다하여 계명을 실천하는 사람이었습니다. (20절) 그러나 이처럼 칭찬 받을 만한 청년의 성품에도 불구하고 막상 그는 주님의 칭찬을 얻지는 못합니다. 그것은 주님과의 이 대화에서 그가 자신의 가진 것들에 의지하여 문답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선한 일과 영생에 대한 관심, 그리고 주님을 찾는 마음은 이 청년의 삶을 빛나게 하는 훈장입니다. 그리고 최선을 다해 계명을 지킨 일들은 그가 자랑할 만한 뱃지입니다. 그러나 훈장과 뱃지를 주렁주렁 가슴에 달고 나타난 이 청년에게 우리 주님은 그가 가진 것을 겨냥하여 직접 질문을 던지십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하시니." (21절) 이에 그 청년은 재물이 많으므로 이 말씀을 듣고 근심하며 갔고 (22절) 우리 주님은 이를 두고 부자는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렵다고 역설하십니다. (23절) 재물이 많은 것은 이 청년이 물질적으로 부자임을 나타낼 뿐만 아니라 그가 영적 자기 의에 빠져 있음을 나타내기도 합니다. 마태복음 5장에서 예수님은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라고 말씀하십니다. (마 5:3) 이는 이뤄 놓은 것이나 영적 자랑거리가 많은 부자 청년을 두고 천국에 들어가기 어렵다고 하신 오늘 본문의 말씀과 정확한 대조를 이루며 이 말씀이 무소유에 대한 지시가 아니라 자기 의와 가진 것에 대해 경계한 말씀임을 분명하게 드러냅니다.

그렇다면, 누가 천국에 들어갈 수 있을까요? 그 원리는 이렇습니다.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부모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마다 여러 배를 받고 또 영생을 상속하리라." (29절) 천국에 들어가는 자격은 이룬 것을 쌓음으로가 아니라 가진 것을 버림으로 주어집니다. 이를 이해하기 위하여 오늘 본문의 앞부분에서 어린 아이를 두고 "이런 사람의 것이니라" 라고 말씀하실 때 그 대상을 보다 면밀히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 때 "이런 사람"은 어린 아이가 아닙니다. "이런 사람"이 어린 아이를 직접 가리킨다면 태어난 순서에 따라 먼저 된 사람이 먼저 되고 나중 된 사람이 나중 되어야 합니다. "이런 사람"은 어린 아이와 "같은" 사람입니다. 세월과 함께 쌓아둔 기록이 있고 자랑할 만한 일들을 많이 겪었을지라도 그것들을 훈장과 뱃지로 달아 두지 않고 끊임 없이 버림으로써 어린 아이와 같게 되려 하는 사람입니다. 더 오랜 세월을 실천과 섬김으로 쌓아둔 사람은 버려야 할 것들의 목록이 길어집니다. 짧은 시간 동안 자랑거리를 쌓은 사람은 버릴 것들의 목록이 짧습니다. 천국에 들어가는 자격이 이룬 것을 쌓아 올림으로써가 아니라 가진 것을 버림으로써 주어진다는 점을 염두에 둘 때 30절에서 주님이 "나중된 자로서 먼저 되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될 자가 많으니라" 라고 하신 말씀의 의미가 보다 구체적으로 드러나게 됩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을 통하여 주님이 서부교회에 주시는 권면의 메시지는 오늘 교회가 갖게 된 훈장과 뱃지와 조직과 역사의 목록과 대략 일치합니다. 첫째, 오늘 서부교회는 연합교회를 탈퇴한 그 자랑을 버려야 합니다. 연합교회를 탈퇴한 것은 우리가 그 곳에서 지쳤고 힘들었기 때문이지 우리의 의로 쟁취한 훈장이 아닙니다. 둘째, 오늘 서부교회는 호주장로교회의 가치를 자랑해서는 안됩니다. 그 개혁의 정신은 잃어버리고 오직 개혁의 역사와 그간의 전통으로 굳어진 틀과 개혁의 모양새만 남았다면 500년 스코틀랜드 개혁주의의 전통은 쓸 모 없는 뱃지가 됩니다. 개혁 주의를 붙들고 그 프레임에 개혁을 끼워 맞추는 것은 개혁이 아닙니다. 개혁 주의가 아니라 오직 말씀을 붙들고 끊임 없이 자기를 부정하며 가진 것을 버리는 일, 그 일이 원래의 신앙의 개혁입니다. 그리고 셋째, 오늘 서부교회는 새로 생겨난 당회의 지도력을 과도하게 의지하거나 교회가 쌓아 두기 시작한 자랑 거리들을 지키는 일에 경도되도록 허용해서는 안됩니다. 오직 주어진 말씀과 각 개인의 내면에 새겨진 양심으로만 신앙이 정제 되고 그 내용이 활발히 소통되어 신앙 공동체의 공통의 기준으로 공유 되어야 하며 그 공유된 결과가 당회와 운영위원회와 각 기관들을 통하여 구체화 되고 실천 되어야 합니다.

어느 위치에 있든지 날마다 새롭게 생성하는 그 순간들 속에서 나의 생각과 주장을 접고 성도들의 모임인 교회를 통하여 직접 드러나는 그리스도의 다스리심에 적극적으로 순복하는 것, 그것만이 교회가 지켜야 할 가치이고 가야할 길임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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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 하나님 아버지, 교회는 오직 그리스도께서 머리 되시고 하나님께서 주인 되시는 살아 있는 신앙 공동체임을 믿습니다. 역사나 전통이나 조직이나 성취나 의나 자랑할 만한 그 어떤 것으로도 기준을 삼지 말게 하여 주시고 오직 각 성도들이 모여 이루는 교회 공동체를 통하여 드러나는 그리스도의 다스리심을 믿으며 우리들 각 사람이 자기의 뜻과 생각을 꺾고 겸손한 섬김의 자리에 들어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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