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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나눔] 옳은 의도, 바른 절차 (대상 13:1-14)

말씀묵상
Author
lekayo
Date
2019-05-11 15:17
Views
1016
오늘 본문에는 하나님의 언약궤가 수레에서 떨어질까봐 그것을 붙잡으려다 하나님에게 죽임을 당한 웃사의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그러나 이 장의 실제 주인공은 다윗이고 중심이 되는 사건은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기 위해 멈추어 섰던 다윗의 신앙입니다. 그 증거로, 13장을 이루는 전체 14절 중 10개 절에서 다윗을 주어로 사용합니다. 웃사는 이 장의 조연입니다. 웃사는 총 3개의 절에 등장합니다. 하나님은 이 모든 일에 관여하십니다. 다윗과 관련하여서는 7개 절에서 깊은 신앙의 레퍼런스로 등장하시고, 웃사와 관련하여서는 2개 절에서 웃사의 죽음을 불러오는 강렬한 징계로 개입하시며, 마지막 절에서는 축복의 반전을 일으키십니다. 이것이 역대하 13장의 개략적인 지도입니다. 이 장은 절차의 중요성에 대한 이야기를 포함하지만 보다 근본적으로는 하나님의 절대적 주권에 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으며, 절차의 위반에 따른 징계가 드러나 있지만 더 중요하게는 하나님의 절대적 주권에 순종하는 다윗의 신앙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웃사의 죽음은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에 관한 심각한 질문을 불러옵니다. 도대체 인간의 본질은 무엇이기에 수레에서 떨어지려는 하나님의 궤를 붙잡으려고 하였던 웃사가 그 자리에서 죽음을 맞이한 것일까요? 이 사건은 성막의 휘장과 속죄제와 화목제의 희생으로 가려 두었던 인간의 죄악된 본성이 하나님의 영광 앞에 노출되었을 때 하나님의 진노로부터 가리울 그 무엇도 없게 된 인간이 받게 되는 치명적이고 적나라한 징계의 현장을 보여주었습니다. 인간이란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이름 앞에 가차 없이 찢어져야할 죄악된 품성 밖에 남은 것이 없는 존재라는 사실이 여실히 드러났고, 하나님께서 베푸신 규례와 율법은 사실 인간과 하나님 사이의 직접적인 충돌을 막아 인간으로 하여금 죽음을 면할 수 있게 하려는 하나님의 자비임이 밝혀졌습니다. 그리고 웃사의 죽음은 오늘날 우리들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중보하심을 통하지 않는다면 하나님 앞에 직접 나아가 예배할 용기를 절대 얻지 못할 것임을 알게 해 주는 사건이기도 합니다.

예상하지 못하였던 웃사의 죽음은 다윗에게 있어서 충격과 공포를 가져다 주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진노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오래 준비한 계획을 즉시 변경합니다. 다윗은 그 마음이 희구하는 대로 되지 않는 지점에 부딪쳤을 때 오히려 완전한 개별 인격으로서 세계를 통치하시는 절대자 앞에서 두려움을 품고 물러섭니다. 이와 같은 다윗의 생각의 변화는 신앙의 바른 출발점에 대한 중대한 교훈을 제공합니다. 신앙이라는 이름으로 우리는 너무나 쉽게 우리들 자신의 소망과 이성적 사고로 하나님을 대체 하려고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다윗이 계획하였던 것은 하나님의 궤를 모셔오는 일이었고 이는 다윗의 깊은 신앙심의 표현이었습니다. 이 일은 다윗 스스로 깊이 숙고하고 또한 주요 인물들과 숙의하여 결정하고 추진한 사업입니다. 일은 계획대로 흘러갔고 다윗과 백성들은 일치 단결하였으며 음악이 있었고 기쁨이 있었습니다. (8절) 그러나 웃사의 행동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는 이 모든 일을 뒤엎습니다. 다윗의 착한 의도와 하나님의 간섭이 정면 충돌을 일으킨 시점입니다. 하나님은 다윗의 착한 의도를 돌아보지 않으시고 속죄함을 입지 못한 채 언약궤를 붙든 웃사를 즉시 징계하십니다. 인간의 정직과 성실과 양심이 하나님의 반응을 전혀 통제하지 못합니다. 어떻게 보면 이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입니다. 하나님을 절대자로 인정한다면, 우리의 소망을 따라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사는 것이 분명한 이치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피조물의 자리에 있을 것을 요구하십니다. 인간은 자신이 피조물임을 알고 창조주의 주권이 드러난 방식을 바르게 이해하려고 애쓸 때 비로소 하나님의 진노하심을 피할 길을 얻습니다. 그리고 그 길은 율법, 즉 말씀을 통하여 우리에게 이미 열려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내어 주신 다리 이외에 인간이 노력하여 하나님께 이를 수 있는 다른 길은 없습니다. 창조주를 창조주 되게 하고 피조물을 피조물 되게 하는 그 순종의 길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신앙이요 정성입니다. 오늘 본문 중 다윗은 자신의 기획 의도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궤를 우리에게로 옮겨오자 사울 때에는 우리가 궤 앞에서 묻지 아니하였느니라." (3절) 이것은 다윗의 본심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뜻을 직접 묻고 그 뜻을 헤아려 순종하기를 원하였습니다. 이 날 하나님의 궤를 옮겨 오지는 못하였지만 다윗이 궤 앞에서 하나님께 묻기를 원하였던 그 소망은 이미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우리도 또한 우리의 이해와 뜻을 하나님에게 강요하는 전도된 신앙이 아니라 기록된 계시와 말씀인 성경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끊임 없이 묻고 찾는 겸손한 신앙인의 자리에 서기를 간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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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 하나님 아버지, 우리는 대체로 자기 생각에 옳은 바를 하나님의 뜻으로 여기고 그것을 이루려고 합니다. 하나님의 뜻은 묻지도 않고 생각지도 않으며, 자기 삶의 죄악들이 거룩하신 하나님의 생각과 거칠게 부딪칠 때조차 그 자리에서 돌이켜 자신을 돌아볼 시간을 갖지 못합니다. 우리가 선한 양심이라고 믿는 그 모든 의지와 이론들을 잠시 미뤄 두게 하시고 오직 말씀의 거울에 비추어 바른 길을 걷고 있는지 돌이켜볼 시간을 갖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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