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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나눔] 하나님의 확실한 약속 (히 6:13-20)

말씀묵상
Author
lekayo
Date
2019-06-08 08:11
Views
987
꿈꾸는 시간은 낮 시간 동안 의식의 수면 아래로 깊이 내려가 있던 무의식이 활동하는 시간입니다. 이 꿈들은 대개 내면에 깊이 숨겨진 소원의 성취를 다루고 있습니다. 하지만 밤에 꾸는 꿈들은 교묘하게 위장되어 있어서 정말 성취하고 싶은 그 욕구가 무엇인지 알아채기 힘든 모양을 할 때가 많습니다. 그것은 그러한 욕구들이 사회에서 금지된 것들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만큼 꿈은 내밀한 개인의 욕망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종종 꿈이라는 단어를 무의식이 아니라 의식과 결부시켜 사용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한 때에 꿈은 이미 의식의 필터를 거쳐 정리된 형태를 취하므로 사회적으로 공공연히 공유됩니다. 넌 어렸을 때 꿈이 무엇이었니? 라는 질문은 사회적 관계망 속에서 어느 위치에 도달하고 싶었느냐는 질문입니다. 그러므로 의식과 결합할 때 꿈은 내밀한 자기만의 세계에서 벗어나 사회적으로 공유될 수 있는 확장된 기반을 얻게 됩니다.

더 나아가서 같은 소원 성취인데도 그것이 내면의 동기가 아니라 외적인 측면에서 좀 더 공적인 목적과 결부되면 우리는 갑자기 영어를 쓰기 시작합니다. 그것은 비전이라는 단어입니다. 너는 꿈이 무엇이니? 라는 질문이 그 목표 지점을 여전히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영역에 묶어 두는 반면 너는 어떤 비전을 가지고 있니? 라는 질문은 그 목표 지점을 보다 공적인 지점으로 이동시켜 줍니다. 비전은 대체로 보아 좀 더 장기적이고 다른 사람과 함께 다루는 것들에 대한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꿈이 모든 사람들에게 적용 가능한 질문이라면 비전은 리더십 품성을 염두에 둔 질문입니다. 우리는 어린아이들에게는 비전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잘 하지 않지만 청년들에게는 비전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자주 하고 한 조직의 리더를 선임할 때에는 거의 반드시 그가 갖고 있는 비전이 무엇인지를 질문합니다.

훌륭한 비전을 가진 리더들 중에서도 높은 이상을 가진 사람들은 더욱 존경을 받습니다. 이상은 평생을 통하여 간직하고 추구해야 할 궁극적인 삶의 목표 지점을 의미하고 대개의 경우 그 이상을 구현하는 방안에는 개인이 가진 비전이 사회적으로 조직화되고 체계화 되는 과정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비전은 제시하는 것이지만 이상은 다 함께 노력하여 구현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상은 보다 적극적이고 장기적인, 때로는 개인의 일생을 넘어서는, 오랜 영향력을 포함합니다. 영향력 있는 훌륭한 지도자의 이상은 때로 국가의 이념이 되기도 합니다. 이념은 이상보다 견고하고 물러설 틈을 보이지 않으며 매우 큰 규모의 사람들을 포괄합니다. 이상을 위해 죽는 사람은 별로 없지만 이념을 위해 죽는 사람들은 아주 많습니다.

그럼 이념의 너머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아주 오랜 세월이 흘러도 흔들림이 없고 고난에 견디며 온 인류에게 그 구원의 소식이 미치는 그 광대한 영향력은 무엇이라고 부르면 좋을까요? 오늘 본문에서 다루고 있는 문제가 바로 그 너머의 것에 대해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은 꿈꾸지 않으시고 대신 약속하십니다. 하나님이 장래 일을 약속하실 때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끈기 있게 참아 내고 그 약속을 믿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 오늘 본문 중에서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실 때에 가리켜 맹세할 자가 자기보다 더 큰 이가 없으므로 자기를 가리켜 맹세하여 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너에게 복 주고 복 주며 너를 번성하게 하고 번성하게 하리라 하셨더니 그가 이같이 오래 참아 약속을 받았느니라." (13-15절.) 아브라함은 그 오래 참음으로 믿음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이 때 하나님의 약속은 이스라엘이라고 하는 선택된 민족의 국가적 장래에 관한 것이었고 하나님의 강력한 실행을 확인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어지는 16-18절에서는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을 두고 다시 그것을 맹세하여 확고하게 하여 주신 것을 밝히고 있습니다.

18절에서 말하는 "이 두 가지 변하지 못할 사실"이란 하나님의 약속과 맹세를 의미합니다. 우리가 사랑을 맹세할 때 하늘만큼, 땅만큼, 전 지구만큼, 우주만큼 사랑한다고 하며 그것이 무엇이든 가장 광대하고 영원하고 확고한 것을 찾는 것처럼 하나님도 하나님 자신 외에 더 크고 확고하며 영원한 것이 없으므로 그 자신을 두고 맹세하여 그 약속을 확정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와 같이 도저히 변하지 못할 사실을 대할 때 우리가 품게 되는 것, 그것이 바로 "소망"입니다. 19절에서는 "이 소망을 가지고 있는 것은 영혼의 닻 같아서 튼튼하고 견고하여 휘장 안에 들어가나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절에서의 소망은 우리가 알고 있는 소원 성취의 모든 단위를 넘어서는 가장 광대한 것에 대한 단어입니다. 밤에 꾸는 꿈보다, 의식과 결부된 꿈보다, 젊어서 품게 되었던 비전보다, 평생을 두고 실현해야 할 이상보다, 국가와 민족을 통합하는 이념보다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더 크고 확고한 것에 대한 소망입니다.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이 이스라엘 민족과 국가에 대한 것이었다면 오늘 본문에서 설명하는 하나님의 약속과 맹세는 온 인류의 영원한 구원에 관한 약속과 맹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 자신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바로 그러한 하나님의 약속과 맹세의 성취와 첫번째 증거가 되십니다. 다시 한 번 하나님은 그 자신 외에 이처럼 크고 광대하며 영원한 직무를 담당할 자가 없으므로 그 자신으로 하여금 그 직무를 담당하게 하셨습니다. 오늘 본문 마지막 절에서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그리로 앞서 가신 예수께서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라 영원히 대제사장이 되어 우리를 위하여 들어 가셨느니라." (20절.) 우리가 가져야 할 소망은 영원하신 하나님이 약속하고 그 자신의 이름으로 맹세하였으며 스스로 육신을 입고 땅에 오셔서 성취하신, 변할 수 없이 확고한 이 일에 관한 것입니다. 우리의 모든 꿈과 모든 비전과 이상과 이념을 넘어서는 하나님의 약속과 맹세가 우리를 영원한 구원으로 반드시 이끌어 주실 것을 믿고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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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은 절대 변할 수 없음을 믿고 감사 드립니다. 또한 온 우주와 모든 피조물보다 광대하신 하나님 자신의 이름을 두고 이를 맹세하신 그 일에 소망을 두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아브라함에게 복의 근원이 될 것이라고 하신 그 약속을 우리 모두가 함께 받은 약속으로 믿고 그 소망 안에 굳게 설 수 있도록 늘 동행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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