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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나눔] 우리를 감싸고 계시는도다 (시 125:1-5)

말씀묵상
Author
lekayo
Date
2019-06-29 09:10
Views
1126
최근 한국과 호주에서 각각 뜨거운 이슈가 되고 있는 교계 소식이 있습니다. 분당의 한 대형 교회에서는 젊은 부목사님 한 분이 수요 예배 설교 중 동성애 관련 이슈를 언급하였다가 큰 저항에 부딪쳤고 호주에서는 촉망 받는 럭비 선수가 본인의 페이스북에 신앙적인 경고의 글을 올리면서 그 글에서 열거한 죄악의 명단에 동성애를 포함하였다가 구단에서 해고된 후 법정 투쟁을 이어가기 위해 크라우드펀딩 사이트에서 모금을 시작한 것이 첨예한 논쟁을 불러 일으키기도 하였습니다. 이 둘은 모두 깊은 신앙심에서 비롯한 일들이 외부의 거센 압박에 직면하게 된 사건들입니다. 이 두 사건은 어찌 보면 하나의 아레나에 서로 다른 문으로 들어온 별개의 이슈들입니다. 그 하나의 동일한 아레나는 동성애라고 하는 이슈입니다. 분당의 교회의 경우 동성애 집회에 대한 크리스찬 그룹의 적극적인 반대 입장 표현에 대한 주의를 촉구하는 방향에서 이 일에 진입하였고 호주의 럭비 선수의 경우에는 동성애에 대한 분명한 반대의 입장을 밝히는 것이 종교적 자유임을 밝히고 그 권리를 확보하려는 방향에서 이 일에 진입하였습니다. 이 둘은 서로 다른 문으로 들어와 같은 마당에 섰고 몰아치는 비난과 격려의 십자 포화 한 중앙에 각자 서게 된 것입니다.

논쟁은 크게 세 갈래입니다. 첫째, 그 신앙적 해석이 옳바른 해석인가, 둘째, 그 신앙적 해석을 전달한 방법이 옳바른 방법인가, 그리고 셋째 그것이 대의적인 측면에서 옳은 싸움인가의 질문들입니다. 이 세 가지 모두 하나의 핵심적인 질문을 담고 있습니다. 그것은 “옳은 행동인가”의 질문입니다. 이 질문들은 모두 각 사람의 행위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이슈가 벌어진 사회적 조건에 맞추어 질문할 수 있습니다. 보다 메타적인 관점에서입니다. 예를 들면, 이슈에 가담하는 사람들은 어떤 구성을 보이는가, 이슈가 형성된 과정은 어떠한가, 이슈는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는가 등의 질문들입니다. 이러한 질문들은 두 사람의 행동에 대한 질문이 아니라 공통적으로 서 있는 아레나에 대한 질문들입니다. 이 사례의 주인공들은 들어온 문으로 본다면 서로를 상충하는 입장으로 볼 수 있겠지만 서 있는 자리로 본다면 같은 입장이 될 것입니다. 들어온 문이 정당한 문이냐 아니냐는 사실 중요하지 않습니다. 들어와 서게 된 그 자리가 어디냐가 중요합니다. 그 자리에 서 있으면 십자 포화를 맞는 것입니다. 그 자리는 정치적 논쟁의 자리이고 전투하는 자리이며 분쟁하는 자리이고 주장하고 절망하고 분노하는 자리입니다. 크게 보아 한국의 사례는 그 자리가 어떤 자리인 줄을 모르고 진입한 듯하고 호주의 사례는 그러한 자리인 줄 알고 들어선 듯 합니다. 그런 차이 때문인지 한국의 사례는 그 이슈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끌려 다니는 모습이 되었고 호주의 사례는 이슈의 중심을 동성애에서 종교적 양심과 자유의 문제로 전환을 시도하며 팽팽히 맞서는 그림이 되었습니다.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시온 산이 흔들리지 아니하고 영원히 있음 같도다
산들이 예루살렘을 두름과 같이 여호와께서 그의 백성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두르시리로다
악인의 규가 의인들의 땅에서는 그 권세를 누리지 못하리니 이는 의인들로 하여금 죄악에 손을 대지 아니하게 함이로다
여호와여 선한 자들과 마음이 정직한 자들에게 선대하소서
자기의 굽은 길로 치우치는 자들은 여호와께서 죄를 범하는 자들과 함께 다니게 하시리로다 이스라엘에게는 평강이 있을지어다 (시 125)

오늘 본문인 시편 125편은 성전을 향해 올라가며 부르는 노래입니다. 성전을 향하여 순례의 길을 걸으면서 하나님의 언약을 되새기는 일은 매우 뜻 깊은 의례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시는 순례자나 순례자의 행위에 초점을 두지 않습니다. 시적 진실이 순례자의 시선을 따라 전개되지 않고 대신 순례자를 포함한 전체 구도에 대한 묘사로 진행되기 때문입니다. 이 시는 순례에 나선 순례자의 길을 메타적인 관점에서 조망하고 있습니다. 이 순례의 길을 전체적으로 조망하는 시적 화자의 시야에 들어와 있는 재료는 단 두 가지, 첫째, 시온 산이 있다는 것과 둘째, 산들이 예루살렘을 두른다는 것입니다. 1절 말씀입니다.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시온 산이 (흔들리지 아니하고 영원히) 있음 (같도다.)" 또한 2절 말씀입니다. "산들이 예루살렘을 두름(과 같이 여호와께서 그의 백성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두르시리로다.)" 이 두 가지 심상이 곧 이 시의 시적 상상력을 규정하는 시의 아레나입니다. 이 아레나에는 누가 어떤 모습으로 들어오느냐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누가 어떤 모습으로 들어오든 그 사람은 이 아레나가 제공하는 시적 진실에 순식간에 포섭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이 시에서의 아레나 - 시적 공간은 무엇을 드러내고 있습니까? 첫째, 화자는 시온 산이 흔들리지 아니하고 영원히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 하였으니 시온 산도 분명 변하였을 것이고 경우에 따라서는 과거의 시온 산과 오늘날의 시온 산이 같은 산이 아닐 수도 있을 것입니다. 사실과 분명히 다른 진술이 진실성을 갖추려면 그 진술로서 보다 포괄적인 다른 진리를 상징하는 수 밖에 없습니다. 이 시온 산은 무엇을 상징합니까? 이사야 선지자는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이르시되 보라 내가 한 돌을 시온에 두어 기초를 삼았노니 곧 시험한 돌이요 귀하고 견고한 기촛돌이라 그것을 믿는 이는 다급하게 되지 아니하리로다." (사 28:16) 그리고 베드로와 바울은 각각 이 돌이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확증하였습니다. (벧전 2:6, 롬 9:33) 그러면 그 산으로 둘러 싸인 예루살렘은 어떻습니까? 이 곳은 "의인들의 땅"입니다. (3절) 이 때의 예루살렘도 반드시 의인들만 사는 곳은 아니므로 의인들의 땅이라는 표현 또한 사실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이 의인들의 땅 또한 보다 큰 다른 진리를 상징하고 있음을 알아챌 수 있습니다. 이 예루살렘은 무엇을 상징합니까? 그곳은 하나님께서 산처럼 팔을 둘러 감싸고 계신 곳입니다. 그리고 이 땅에 선 사람들이 곧 "의인"이며 (3절) "선한 자들"과 "정직한 자들"인 동시에 (4절) 하나님의 선민 "이스라엘"입니다. (5절)

이제 이 시의 시적 아레나가 상징하는 바가 드러났습니다. 이 아레나는 그리스도 예수를 기촛돌로 하여 하나님이 의롭게 하신 그 자리, 곧 영적 예루살렘이며, 그 곳은 하나님의 선대하심과 (4절) 하나님의 평강으로 (5절) 십자 포화를 맞는 곳입니다. 오늘 본문 3절에서는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악인의 규가 의인들의 땅에서는 그 권세를 누리지 못하리니 이는 의인들로 하여금 죄악에 손을 대지 아니하게 함이로다." (3절) 이 말씀은 그 곳에서 의인들이 죄악에 손을 대지 아니하므로 악인이 권세를 누리지 못하며 그러므로 그 곳이 거룩한 곳이 된다는 뜻이 아닙니다. 이는 하나님이 구별하여 품으신 거룩한 곳이므로 그 곳에서는 악인이 권세를 누리지 못하게 해 달라는 간청이요 기도입니다. 그렇게 해야만 그 곳에서 의인들이 죄악에 손을 대지 않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이 시가 제시하는 의로움과 선함과 정직함의 이미지는 순례자들에게 "옳은 행동인가"의 질문을 하기 위하여 제시된 것들이 아닙니다. 이 시는 우리에게 "어디에 서 있는가"의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지명하여 불러주신 그 자리에 서 있는 그 사람들이 의인이요 선한 자요 정직한 자입니다.

다음 주말 2박 3일간 서부교회 청년부의 겨울 수련회가 열립니다. 그 곳이 하나님이 지명하여 불러 주신 은혜와 평강의 영적 예루살렘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 곳에 어떤 경로로 들어가도 상관 없이 지명하여 불러 세우신 그 곳에 서 있는 것이 은혜요 평강이고 그 곳에 서 있는 그 사람들이 의인이고 선한 자이며 정직한 자이고 영적 이스라엘이 되는 그런 곳이 되기를 위해 기도합니다. 이 수련회와 교회의 모든 예배의 자리들이 곧 예수 그리스도로 그 시온의 기촛돌을 놓고 하나님의 팔로 두르신 의의 예루살렘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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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 하나님 아버지. 이제 20대와 30대를 보내는 주님의 의인들이 있습니다. 옳은 신앙을 가져서가 아니라 옳은 말을 할 줄 알아서가 아니라 옳은 가치를 지향해서가 아니라 그저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십자 포화처럼 쏟아지는 그 신앙의 아레나에 가서 섬기기를 바라는 그 순종 만으로 의를 얻고 선함과 정직함과 영적 이스라엘의 상속권을 받아 누리는 놀라운 은혜가 넘치게 하여 주시옵소서. 말씀을 맡은 손석훈 목사님과 세미나를 지도하는 도호현 장로님과 모든 청년들의 길에 동행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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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6-29 09:18
    새벽기도에 못 갔지만,, 말씀을 카페웨스턴을 통해 접할수 있으니 감사합니다.^^

  • 2019-06-29 19:05
    네~ 주말 근무하시느라 수고 많으셨네요.... 내일 예배 때 반가이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