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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나눔] 재림, 우리의 위로와 소망 (살전 4:13-5:11)

말씀묵상
Author
lekayo
Date
2019-07-06 08:09
Views
1059
오늘 본문을 통하여 바울이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는 매우 분명합니다. 그것은 첫째 위로와 소망을 주려는 것이고 둘째 바르게 행하기를 격려하려는 것입니다. 13절 말씀입니다. “이는 소망 없는 다른 이와 같이 슬퍼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4:13) 또한 18절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말로 서로 위로하라.” (4:18) 이어지는 5장의 6절 말씀입니다. “오직 깨어 정신을 차릴지라.” (5:6) 그리고 11절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피차 권면하고 서로 덕을 세우기를 너희가 하는 것 같이 하라.” (5:11) 요약하면, 4장 마지막 부분과 5장 첫 부분에 걸쳐 전한 바울의 핵심 메시지는 슬퍼하지 말고 서로 위로하며 오직 깨어 정신을 차리고 피차 권면하고 서로 덕을 세우라는 것입니다. 그 외의 모든 문장은 이러한 권면을 뒷받침하기 위한 추가의 정보들입니다. 그리고 이 모든 권면이 그리스도의 재림의 때를 배경으로 주어집니다.

주님의 재림은 곧 세상의 종말과 결부되어 있습니다. 종말은 현재 진행되고 있는 모든 급박한 상황들에 대한 부고입니다. 아무리 긴급한 일이 있더라도 종말 앞에서는 단 한 순간의 지체함도 허용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종말은 또한 동시에 모든 지연된 판단에 대한 독촉이기도 합니다. 죽은 자들에 대해 유보되었던 최후의 심판이 역사 속에서 당장 진행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종말은 긴박한 것과 지연된 것 사이의 우선 순위를 완전히 뒤집어 놓습니다. 어쩌면 종말은 인간의 역사가 시간의 순서대로 쌓아 올린 모든 사건들을 섬세하고 장엄하며 극도로 정교한 판단으로 뒤섞어 무시간적 영원으로 재정렬하는 하나님의 절대적 주권의 행사가 이루어지는 지점이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재림은 또한 시간의 종말을 의미합니다. 더 이상 역사는 시간의 순서대로 흐르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직접 통치하는 그 세계로 진입하는 과정이 어떤 변화를 가져올 것인지는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다만 분명한 것은 하나님의 궁극적인 언약이 이루어진 그 때 우리는 영원한 구원의 기쁨 속에서 그리스도로 충만한 복락을 누리며 살게 될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17절 하반절 말씀입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4:17) 그리고 10절은 그것이 그리스도의 사역의 결과임을 보여 줍니다. "예수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사 우리로 하여금 깨어 있든지 자든지 자기와 함께 살게 하려 하셨느니라." (5:10) 모든 인류와 모든 피조물을 억누르는 존재의 가장 근본적인 슬픔의 근원은 시간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재림은 세상이 주는 모든 고통과 슬픔에 대한 궁극적인 종결의 시점을 의미합니다.

인간의 삶은 출발지와 도착지 간을 구획 지어 놓고 서로 다른 구획을 할당 받아 정해진 시간에 주어진 구간만을 운행해야 하는 비행기 시간표와 같습니다. 그 시간에 그 구간을 운행하는 해당 비행편은 다시 돌아오지 않습니다. 비행의 본질이 시간이듯이 인간의 삶의 본질 또한 시간입니다. 인간의 삶은 태어나 있음으로 시작하여 (출발지) 죽음으로 종결됩니다. (도착지) 이처럼 정해진 시간 안에서 그 시간의 완성을 향해 달려 가는 것이 인간 존재의 본질임을 알아야 합니다. 죽음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그 죽음을 현재의 내 존재 안으로 끌어 안고자 할 때, 우리는 두 갈래의 갈림길에 직면하게 됩니다. 그것은 영원한 생명 또는 영원한 죽음으로의 길입니다. 그 길은 하나님께서 우리들 각 사람에게 이미 정해 두신 길입니다. 바울은 9절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세우심은 노하심에 이르게 하심이 아니요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게 하심이라." (5:9) 이 일은 하나님으로서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미 완성하신 일이고 (요 19:30) 또한 우리로서는 아직 이루어야 할 일입니다. (빌 2:12)

인간의 본질인 시간으로 쌓아 올린 인간의 역사 또한 그 본질은 시간입니다. 인간 개인에게 있어서 오직 유일하게 확정적인 최후의 가능성인 죽음이 그 전체성과 완전성에 있어서 결코 드러나지 아니한 채 날마다 임박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인간의 역사 또한 주님의 재림으로 들이닥치는 그 종결이 언제나 인간 역사의 전체성과 완전성에 있어서 드러나지 아니한 채 날마다 임박합니다. 그리고 그 종국의 지점에서, 마침내 모든 시간의 굴레를 벗어난 바로 그 지점에 이르렀을 때, 더 이상 인간 개인과 그 총합인 역사를 규정 짓던 시간은 의미를 갖지 않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재림은 각 개인의 종말과 인간 역사의 종말을 하나의 지점으로 이어붙이는 바로 그 지점이 됩니다. 그 때가 시간적으로 언제인지를 아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형제들아 때와 시기에 관하여는 너희에게 쓸 것이 없음은." (5:1) 이에 대해 예수님도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마24:36) 이 때 영존하시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시간의 구애를 받지 않으심을 깨닫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이 점을 바르게 이해한다면 풀기 어려운 교리적 문제들을 대할 때 그것이 시간이라고 하는 우리의 본질에서 기인한 제약 때문일 수 있다는 점을 양해할 수 있게 되기 때문입니다.

시간은 우리에게 두 가지 틀에서 제약을 줍니다. 하나는 생각의 틀이며 다른 하나는 실천의 틀입니다. 생각의 틀로는 우리는 좀처럼 시간의 제약을 벗어나 하나님의 기준에 다다를 기회를 얻지 못합니다. 그러나 실천의 틀로는 시간을 통하여 하나님과의 사귐을 누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할수록 그 분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우리는 실천을 통하여 하나님을 더욱 잘 알아갈 수 있습니다. 계명에 순종하는 실천이야말로 시간에 매인 우리 삶의 본질을 하나님의 본질에 잇대어 주는 연결 고리가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에게 주신 재림과 부활에 관한 바울의 메시지를 바르게 읽는 방법은 그것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이성적으로 평가하고 정리하는 것이 아니라 이 말씀을 통하여 소망으로 위로를 얻고 날마다 깨어 빛의 자녀로서 사는 일에 있어서 실천적인 도전을 얻는 것입니다. "형제들아 너희는 어둠에 있지 아니하매 그 날이 도둑 같이 너희에게 임하지 못하리니 너희는 다 빛의 아들이요 낮의 아들이라." (5:4-5a) 부활하신 주님께서도 승천하시기 전 이스라엘을 회복할 때가 언제인지 묻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답하셨습니다. "때와 기한은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의 알바 아니요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행 1:7-8) 우리도 이와 같이 하나님의 때에 관한 어떠한 미혹에도 흔들림 없이 오직 예수님을 증거하는 일에 집중하고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에 순종하며 날마다 새로운 마음으로 하나님과의 깊은 사귐으로 거듭 나아갈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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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 하나님 아버지, 온 우주에 하나님의 영이 미치지 아니한 곳이 없으며 전에도 계셨고 지금도 계시며 영원히 계시는 줄을 믿습니다. 시간도 장소도 아무런 제약도 없으신 주 하나님의 광대하심을 우리는 이해할 길이 없습니다. 오직 주어진 시간 안에서 주님이 명령하신 것들을 실천하며 하나님께서 지정하신 방식으로 주님을 섬기는 것만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인 줄을 아오니, 그 길 가운데 지치지 않도록 힘 주시고 아버지께서 정하신 때에 우리 모두를 영원하신 하나님의 세계로 이끌어 주실 그 약속 가운데로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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